Da Vinci's Pen

몽치(@mongchi_cmcm)님 타로 커미션


어느 날, 너는 나의 꿈을 방문했다.


꿈의 주인 유우×꿈의 방문자 아즐
 

오늘 하루, 아즐은 드물게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말 시험과 할로윈 축제 때문에 제대로 밤잠을 자지도 못 했으니, 정규 수업 이후에 아무런 스케쥴이 없는 것이 낯설 정도예요. 아즐은 수업이 끝난 이후, 시즌 메뉴 재정비를 위해 잠시 쉬고 있는 모스트로 라운지를 둘러봅니다. 그러다 잠깐 기말 시험을 위해 아즐에게 상담을 요청했던 자들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홍차를 한 잔 끓여 마셔요. 여러모로 한가한 일정에, 아즐은 오늘따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럴 때 유우가 곁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늘 유우는 그림과 함께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시내에 놀러 나간다고 했거든요. 아즐은 유독 유우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느낌 받곤 했습니다. 유우는 늘 새로운 이야기를 아즐의 앞에서 조잘거렸고, 아즐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임에도 그것들을 유우가 자신을 위해 기억해 두었다는 점이 내심 마음에 들어 유우의 수다를 막지 않았거든요. 유우는 내일 모스트로 라운지에 찾아와 자신이 무얼 샀으며 어떤 것을 보았는지 이야기해줄 게 분명합니다. 그 수다에 진지하게 어울려주기 위해서는, 미리 체력을 비축해두어야겠죠. 그렇게 생각하며 아즐은 평소보다 이르게 잠에 들었습니다.

유우는 오늘 신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그림과 시내에 놀러 나가기로 했거든요. 시험이 끝난 지 며칠이 되지 않았지만, 그간 낡은 기숙사의 청소며 하는 잡무를 처리하느라 제대로 여유를 즐긴 적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오늘만큼은, 자유를 마음껏 즐기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유우는 시내에서 펼쳐지는 마술 쇼도 구경하고, 여러 화려한 옷들과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도는 노점상들까지 모두 눈에 담습니다. 나중에 학교로 돌아간다면, 아즐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들이니까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우는 아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내용은 아주 사소해요. 오늘 유우가 무엇을 먹었다던가, 누구와 함께 수업을 들었다던가. 옆 반의 어떤 애가 그러는데 오늘 루치우스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던가 이런 일방적 정보전달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시작되기 몇 주 전, 유우는 드물게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어요. 아즐은 그런 유우에게 특별히 이야기를 들어줄 테니 마음껏 속을 털어놓아 보라고 제안했고, 유우는 그 짧은 시간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아즐은 '유우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1학년의 소문은 잘 들려오지 않으니까.' 등등의 핑계를 대며 유우의 입으로 이야기를 듣길 원했고, 그 관계가 발전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제는, 유우가 무엇을 보고 들을 때 마다 아즐에게 선물할 이야깃거리로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유우는 그 사실이 기쁩니다. 거리를 구경하는 동안, 이 풍경을 아즐에게 전달해주기보다 아즐과 함께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하지만 아즐은 늘 바쁩니다. 앞으로 3학년이 되면 지금보다 배로 바빠질 거예요. 그러니 괜히 욕심내어서는 안 됩니다. 안 그래도 유우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 주고 있으니까요. 아즐은 절대 손해 보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유우도 그것을 잘 알아요. 유우는 아즐과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고, 그러려면 그에게 손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유우는 언젠가 그에게 기억되지 못 할 빚이 될 테니까요. 이 이상 아즐에게 잔재랄까 신경쓰이는 잔여물을 지워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각의 하루를 마치고 잠에 들어요. 

그리고 아즐은 유우의 꿈에 방문하게 됩니다.

아즐은 드넓은 공터에서 눈을 떠요. 하늘은 온통 까맣고, 한 점 빛도 없지만 발 아래의 흰 꽃들은 선명하게 보입니다. 마치 꽃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요. 하늘에는 달도, 별도 없어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꽃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들이에요. 때문에 언뜻 보면 아주 아름답고 몽환적이지만, 알고 보면 황량하고 생명기가 없는 풍경입니다. 아즐은 왠지 좋지 않은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해요.

아즐은 곧 깨닫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앞으로 걸어나갈수록, 똑같은 풍경만 반복된다는 것을요. 분명 아까 지났던 곳을 또 걷는 느낌입니다. 방향 표시를 해 두고자 들고 있던 스태프로 꽃을 짓이기며 지나왔는데, 정신을 차려 보면 짓이겨진 꽃들이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이 때부터, 아즐은 살짝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해요. 이 곳은 누구의 공간인지, 이 공간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것을 마음에 품고 사는지 아즐로서는 도저히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풍경을 보는 내내, 아즐은 외롭다는 느낌을 받아요. 마치 아즐이 어릴 적, 항아리에 틀어박혀 있을 때 보던 풍경 같습니다. 그 때도 이 곳처럼 어둡고, 황량하고, 숨쉬는 것이라곤 나 자신밖에 없었거든요. 어쩌면 아즐은 꿈 속을 걷는 내내, 이 꿈의 주인에게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어떤 연유로 이런 황량한 꿈 속 풍경을 갖게 되었는 지 궁금해져요. 자신의 또래인지, 혹은 자신보다 한참은 오래 산 사람인지, 그래서 이렇게 광활하고 외로우며 더없이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을 받게 하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던 중, 아즐은 저 멀리에서 유우를 발견합니다.

유우는 아즐보다 한참 앞서나가고 있어요. 때문에 아즐에게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즐은 흰 원피스를 입은 저 소녀가 유우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머리에 아즐과의 계약이 담겨 있는 노란 리본이 살랑대고 있었는걸요. 아즐은 반가움에 유우에게 달려가지만, 유우와 아즐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습니다. 마치 마법을 써서 달리고 있는 것처럼, 유우는 한 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아즐과 멀어져요. 아즐은 그제야 이 꿈의 주인이 유우임을 깨닫고, 자신이 아무리 열을 내어 달려보았자 유우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없음을 알아차립니다. 

아즐은 영원히 유우에게 닿을 수 없습니다. 유우가 뒤돌아 아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면요. 아즐은 끊임없이 유우의 이름을 외칩니다. 하지만 유우는 아즐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아즐은 전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듯 유유히 꽃밭을 걸어나갑니다. 그런 유우를 뒤쫓아가던 아즐은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결국 발을 멈추고 말아요. 어찌나 오래 달렸던지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폐는 찢어질 듯 끊임없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아즐의 수많은 외침에도 몸짓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유우가 천천히 아즐을 돌아봅니다. 그리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요. 마치 지금까지 달려와주어 고맙다는 듯, 혹은 이 이상 자신을 쫓지 말라는 듯 그리고 아즐이 유우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때, 그는 퍼뜩 잠에서 깨고 맙니다.

유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즐은 유우의 인생에 있어 특별한 사람' 임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해요. 끝도, 생명도 없는 꽃밭을 걸어나가는 이에게 아즐은 기억될만한 하나의 푸른 점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우는 기쁘게 다음 여정을 시작할 수 있어요. 끊임없이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그 한 점만을 기억하는 건 어렵지만, 유우는 이미 수천 번도 더 해 본 일인걸요. 이제는 능숙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즐에게 감추고 싶어요. 아즐이라면 분명 그런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 게 분명합니다. 새로운 계약서와 함께요. 하지만 유우는 자신의 진실을 담은 무게가 결코 아즐이 버틸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끊임없이 들리는 아즐의 외침도 외면하고, 앞으로 걸어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어요.

아즐은 그간 평범한 감독생인 줄 알았던 유우가, 처음으로 '무엇' 임을 짐작합니다. 그건 보통 사람의 꿈이 아니었어요. 보통 꿈은 사람의 내면을 리플레이하는 장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건 꿈이라고 하기에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아즐은 이 기이한 현상에, 아직도 파르르 떨리는 다리를 꾹 움켜쥐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요. 동등한 관계에서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유우는 아즐에게 숨기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이건 불공평해요. 때문에 아즐은 계약 위반을 핑계삼아 유우를 멈춰세울 작정입니다. 아즐이 항아리에서 나온 것처럼, 유우 또한 그 황량한 꽃밭에서 나오길 바라요. 

꿈에서 깬 이후, 아즐은 유우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갑니다. 유우가 자신에게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더러, 그간 자신이 유우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해 버렸으니까요. 약간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겠네요. 아즐의 노력으로 인해 기울어진 관계가 조금은 나아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정작 유우는 아즐의 급작스런 대시가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말이에요.
유우는 어떻게든 거리를 유지하려 하고, 아즐은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려 하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쫓고 쫓기는 나날이 계속되어요. 아즐의 행동에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쌍둥이들이 아즐이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나눌 정도니까요.

하지만 아즐도 다급하긴 마찬가지에요. 4학년이 되면 교외 연수를 나가야 하는데, 그러면 유우를 혼자 두게 되니까요. 앞으로 일 년 남짓한 시간 내에, 유우에게 신뢰를 얻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계약서나 문서가 아닌, 구두약속만으로 누군가에게 신뢰를 얻는 일이란 어렵고, 아즐에게 있어서는 처음 도전해 보는 일이에요.
하지만 유우와 가까워지고 싶으니까. 유우의 속마음을 알고 싶으니까  아즐은 거리낌없이 도전합니다.


추가질문


Q. 아즐이 꾼 꿈을 유우에게 직접 얘기한 적이 있을까요?
A.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황량한 풍경은 즉 유우의 약점이랄까 속내를 나타내는 것이니까요. 이는 곧 유우의 약점이라는 것을, 아즐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가까워졌다고 한들, 유우는 기본적으로 경계심이 높은 사람이에요. 아즐은 유우가 자신과 거리를 아주 멀리 유지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때문에 꿈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네요.

Q. 이후에도 아즐은 이런 꿈을 꾸게 될까요?
A. 아즐은 다음에도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꿔요. 늘 유우를 쫓아가는 것만큼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우는 아즐이 자신의 꿈을 방문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합니다. 넓고 광활한 유우의 공간에, 아즐은 그저 작은 하나의 푸른 점에 불과하니까요. 꿈은 반복해서 꾸지만, 둘의 거리감은 아즐이 노력해야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니 둘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이후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네요.(특별 퀘스트가 아닌 보상이 언제 올 지 알 수 없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상 퀘스트가 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즐에게는 이 불합리로 가득찬 퀘스트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아즐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고 시간을 내는 유일한 사람 어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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